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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때 청으로 압송되었는데 군국기무처엔...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때 청으로 압송되었는데 군국기무처엔 어케 참여했나여??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때 청으로 압송되었는데 군국기무처엔 어케 참여했나여??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1882) 때 청나라로 끌려갔는데 1880년대 중반에 설치된 군국기무처(1885)에 어떻게 참여했느냐는 질문은 시기와 정치적 맥락을 고려하면 답이 나옵니다.
1. 임오군란과 청나라 압송 (1882)
임오군란(1882): 구식 군인들의 폭동 → 민씨 정권에 반발 → 흥선대원군이 다시 등장해 정국 장악.
하지만 청나라(원세개)가 군사 개입 → 흥선대원군을 톈진(天津)으로 압송해 사실상 유폐시킴.
이후 약 3년간 청나라에 억류되어 정치에서 배제됨.
2. 귀국 및 재등장 (1885년)
1885년 초, 청나라가 흥선대원군을 조선으로 귀환시킴.
배경: 일본과의 갈등(갑신정변 후 일본과 청의 긴장) 속에서 보수 세력을 재정비하려는 의도.
귀국 직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고, 흥선대원군이 고문 형식으로 관여합니다.
3. 군국기무처와 흥선대원군의 역할
군국기무처(1885): 갑신정변 실패 후 청의 주도로 보수 정국 수습 및 개혁 조율 기관으로 설치.
명목상으로는 개혁 기구였지만, 실제로는 청의 입김 아래 보수 질서 회복에 가까운 조직.
흥선대원군은 명예직 고문이나 실질적 권력은 제한적이었고, 다시 권력을 잡지 못했지만 상징적 인물로 활용되었죠.
[ 결과 ]
즉, 흥선대원군은 임오군란 직후 청에 끌려갔지만, 1885년에 귀국한 후 군국기무처에 고문 자격으로 참여한 것입니다. 다시 정국을 쥐진 못했지만, 청과 민씨 정권에 의해 상징적으로 활용된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