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g
i
회원가입시 광고가 제거 됩니다
1860~1900년... 1860~1900년 동안 조선과 주변 국가들에선 무슨 무슨 전쟁이 터졌고 그때
1860~1900년 동안 조선과 주변 국가들에선 무슨 무슨 전쟁이 터졌고 그때 조선군과 청이 힘을 합친 전투가 뭐고 그시기에 청나라랑 조선에 관계는 어떤지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1860년부터 1900년까지 조선과 주변 국가들은 정말 격동의 시기를 보냈죠. 혼란스러운 이 시기의 전쟁과 청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1860~1900년, 조선과 주변 국가들의 주요 전쟁
이 시기는 조선이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맞서고, 내부적으로는 개혁과 보수 세력 간의 갈등이 심화되던 때였어요. 주변 국가들도 제국주의 경쟁에 한창이었죠.
-조선 내부 및 서구 열강과의 충돌:
병인양요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이에요. 천주교 박해를 구실로 침략했고, 조선군은 문수산성과 정족산성 등에서 항전했지만 외규장각 도서 등을 약탈당했습니다.
신미양요 (1871년): 미국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이에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침략했고,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광성보 전투에서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무단 침입하여 조선군과 교전한 사건입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은 강화도 조약(1876년)을 강요하며 조선의 문호를 강제로 개방했습니다.
갑신정변 (1884년): 김옥균 등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기회로 일으킨 정변으로, 청의 간섭을 배제하고 급진적인 개혁을 시도했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1894년): 고부 민란을 시작으로 반봉건(반부패), 반외세(반침략)를 외치며 일어난 대규모 농민 운동입니다.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들어오고, 이어서 일본군도 들어오면서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됩니다.
-주변 국가 간의 대규모 전쟁:
청일전쟁 (1894~1895년):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나라와 일본이 벌인 전쟁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조선에 파병된 청군과 일본군이 충돌하며 발생했어요. 이 전쟁의 결과 일본이 승리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부정되고 일본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됩니다.
러일전쟁 (1904~1905년): 이 시기 직후에 발생하지만, 청일전쟁의 결과 일본이 요동반도를 차지하려 하자 러시아, 프랑스, 독일이 반발한 삼국간섭(1895년)이 있었고, 이후 조선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러일 양국 간의 대립이 심화되다가 결국 러일전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시기 이후에 발생하므로 간략히 언급)
-조선군과 청이 힘을 합친 전투 (1860~1900년)
이 시기에 조선군과 청나라 군대가 '힘을 합쳐' 싸운 대표적인 전투는 사실 청일전쟁의 양상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청일전쟁 (1894년):
동학농민운동 진압을 위해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했습니다.
이후 일본군도 톈진 조약(청군 파병 시 일본에도 통보)을 구실로 조선에 파병했고, 일본은 조선 정부에 개혁을 강요하며 청군 철수를 요구했습니다.
청군은 조선의 종주국으로서 자신들의 권한을 주장했고, 결국 일본과의 대립으로 청일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조선은 사실상 전장이 되었고, 청나라를 지원하거나 혹은 일본에 맞서 싸우는 형태로 청군과 간접적으로 협력하는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 초기 청군이 조선에 주둔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일 때, 조선군은 자국의 영토에서 청군과 함께 일본군에 맞서는 상황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말해 '동맹군'으로서의 연합 작전이라기보다는,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청과 일본 간의 충돌 속에서 조선이 휘말린 형태에 가깝습니다.
-그 시기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
1860년부터 1900년까지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는 '전통적인 조공-책봉 관계'에서 '근대 국제 질서 속의 종주국-속국 관계'로의 변화를 겪다가, 결국 청일전쟁을 통해 그 관계가 완전히 해체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1.전통적인 종주국-속국 관계 (명분상):
병자호란(1636년) 이후 조선은 청나라를 '상국(上國, 윗나라)'으로 섬기며 사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매년 조공을 바치고 청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명목상으로는 청의 속국이었죠.
조선은 스스로 '소중화(小中華)'임을 자처하며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내세웠지만, 현실적으로는 청의 강력한 힘 아래 있었습니다.
청은 조선의 내정에 직접적으로 간섭하기보다는, 외교적인 형식과 의례를 통해 종주권을 행사하는 데 만족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2.서구 열강 등장과 관계의 변화:
1860년대 이후 서구 열강과 일본이 조선에 접근하면서, 청은 조선에 대한 자신의 종주권을 더욱 명확히 하려 했습니다. 조선이 서구 열강과 독자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견제했죠.
임오군란 (1882년): 이모군란이 발생하자 조선 정부의 요청으로 청군이 개입하여 난을 진압하고, 흥선대원군을 납치해가는 등 조선 내정에 깊이 간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청은 조선에 상무위원(무역 담당관)을 파견하고, 조선의 군사 및 외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사실상 조선을 '보호국'처럼 대했습니다.
갑신정변 (1884년): 갑신정변 당시에도 청군이 신속하게 개입하여 정변을 진압하는 등 조선 내정에 대한 청의 간섭은 더욱 노골화되었습니다.
3.청일전쟁과 관계의 해체:
동학농민운동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 정부가 청에 파병을 요청하면서, 청일 양국의 군대가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는 결국 청일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청일전쟁의 패배 (1895년): 청이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참패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완전히 부정되었습니다. 이로써 수백 년간 이어져 오던 조선과 청의 사대 관계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시기 조선은 자주 독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약화된 국력과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결국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